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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잡는다 (2017) | 시간이 멈춘 곳,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서문: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죄

오래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정답 없이 남겨지고, 잊힌 듯하면서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들. 《반드시 잡는다》(2017)는 그런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연쇄살인 스릴러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와 기억, 그리고 정의의 유효기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추격전이나 젊고 강단 있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늙은 주인공, 낡은 동네, 그리고 너무 오래 전에 벌어진 죽음을 천천히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 포스터

[출처: ㈜AD406, 씨네주,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줄거리 요약: 도시의 어두운 구석에서

주인공 심덕수(백윤식)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의 고집스러운 집주인입니다. 이웃들에게 미움받고, 세입자들과도 단절되어 살아가는 인물이죠.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세입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이어지는 연쇄적인 사건들 속에서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퇴직 형사 박평달(성동일)은 30년 전 미제 사건과 이번 사건 사이의 기묘한 유사성을 발견합니다. 그는 아직 그 범인이 이 도시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결국 둘은 억지로 파트너가 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범인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수사는 스릴 넘치는 액션이 아니라, 오래된 서류, 희미한 기억, 그리고 외면당한 진실을 되짚어가는 고된 여정입니다.

 

인물 분석: 상처받고 늙어버린 이들의 얼굴

  • 심덕수 (백윤식)
    처음에는 욕심 많고 고집 센 노인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외로움과 무력함이 드러납니다. 그는 세상과 담을 쌓았지만, 어느 순간 그 담 너머를 바라보게 됩니다. 백윤식 배우는 단단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 속에 아주 미세한 감정을 담아내며, 인물이 서서히 깨어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합니다.
  • 박평달 (성동일)
    정의감보다 후회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과거 미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은퇴한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자신의 실패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성동일 배우는 특유의 따뜻함과 진중함으로, 무너질 듯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 나정혁 (천호진)
    초반에는 평범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냉정함과 섬뜩함이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천호진 배우는 과장 없는 표정과 조용한 말투만으로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현실 속 괴물 같은 존재감을 각인시킵니다.

 

주제 해석: 잊힌 죄, 남겨진 기억

이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단순히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시간 자체와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세월은 범죄를 덮고, 사람들은 피해자를 잊어가지만, 정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록 늙고 힘없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이 다시 이 사건을 파헤치는 이유는 단지 정의감이 아닌, 자신에게 남겨진 과거와 마주하려는 의지입니다.

특히, 피해자가 고령자였다는 점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분명하게 만듭니다. 사회는 그들의 죽음을 ‘조용한 일상’으로 넘기려 하지만, 영화는 그 삶들에도 마땅한 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연출과 분위기: 느리지만 무게감 있게

김홍선 감독은 서울의 낡은 골목과 오래된 건물을 활용해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구축합니다. 과장된 연출이나 색감 없이, 도시의 시간의 흐름 자체를 보여주는 듯한 미장센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밝지 않은 조명과 바랜 색조는 영화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인물의 감정이 깊어지고, 관객은 그 속도에 적응하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음악과 사운드: 침묵의 힘

이 영화의 음악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대신에, 문 여는 소리, 빗소리, 발걸음처럼 일상적인 사운드가 분위기를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이런 침묵은 때때로 음악보다 더 큰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감성적 여운: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

이 영화가 끝나고 남는 감정은 단순한 통쾌함이 아니라, 오래된 서랍을 조용히 여는 듯한 먹먹함입니다. 범인을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잊힌 죽음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는 과정이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더 이상 사회의 중심이 아닌 노인이라는 점은, 《반드시 잡는다》라는 이 영화가 얼마나 진심으로 ‘기억’과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 조용하지만 강한 추적

《반드시 잡는다》는 요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분노와 묵직한 연민이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이 남긴 흔적에 집중하고, 잊혀진 목소리를 다시 되살리는 방식으로, 이 영화는 단순한 추리극을 넘어섭니다.

정의는 반드시 시끄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낡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 먼지 낀 서류 속 이름 하나로도 정의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조용한 정의의 과정을 담담하게, 하지만 절대로 가볍지 않게 그려냅니다.

 

 

🔗 참고 링크

나무위키 – 《반드시 잡는다(2017)》

영화 ‘반드시 잡는다’, 미제사건 해결 위한 중년들의 꿀케미

‘반드시 잡는다’ 감독 “‘아리동’ 찾으려고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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